하나님 백성의 선교 2장 <자신이 속한 그 이야기를 아는 백성>
세계선교와. 성경 이야기
성경에서 예수 님을 찾기 위해 어떤 복음서를 읽든 선교와 직면하게 되고 사도행전과 서신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선교의 시작은 예수님의 대위임령에서 시작한 것일까? 기독교를 맨 처음 부터 선교적 신앙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용기 있게 거침없이 말하도록 했는가?
예수님의 대위임령의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복음서가 없었다. 단순한 대위임령의 순종이 선교의 이유라면 신약 어디에도 그것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사도행전 1장에 언급되지 않았다. )
누군가는 복음이 받아드릴 시기와 준비와 그들의 철학과 세계관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종교였다고 이야기 하지만 약간의 진실이지만 불충분하다 조금의 대답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회심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정면으로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최초 추종자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선교지로 품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은 자신이 속한 이야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대인으로 그 이야기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이야기가 나사렛 예수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야기의 남은 부분이 무엇을 요구하는 지 알았다.
그들의 공동체에 이방인이 들어옮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서 (행 15장) 그들의 성공적인 기독교 선교로 인해 이야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회 소집되었다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그들은 예수님의 대위임령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야고보의(예수님 동생) 아모스 9장을 인용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확언하였다
바울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고 반대하는 선교적 호소를 정당화 하기 위해 이사야 49장 6절의 구절을 적용하였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너희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셨다"이렇게 쉽게 말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회심 때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를 언급할 수도 있지만 바울은 성경과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로 나타내었다. 예수님도 이것을 대위임령의 근거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눅24장 예수님의 부활의 첫날의 묘사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보내셨다 두 개의 부활 강의를 보겠다
메시아와 선교
첫번째 강의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이루실 이스라엘의 구속이 일어나지 않자 크게 실망했던 두 제자 가운데 예수님은 구약 정경 전체를 들어 그분이 메시아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실상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법이 되는지 설명하셨다. 첫 번째 강의는 지금까지의 그 이야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구약을 살펴보았다 그 이야기는 이야기의 요점 목적지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에게로 이끄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강의는 : 그날 저녁 나머지 제자들과 두번째 구약을 살펴 봄(눅 22:44-48)
제자들이 구약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구약이 이끄는 곳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구약의 개관은 예수님이 성경의 메시아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그것의 선교적 의의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구약은 예수님께 이끌 뿐만 아니라 열방 선교로 이끄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예수님 자신의 삶- 그분의 고난 죽음 부활-의 방향이 성경에 의해 어떻게 통제받는지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그것을 교회의 계속되는 선교가 지 확장하셨다. 이 대위임령은 예수님이 나중에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제자들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님을 뜻한다.
예수님 자신의 권위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이야기의 필연적 결과였다. 그것은 메시아로 이끌고 이어서 열방 선교로 이끈다
그 이야기 전체 보기
창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제공해 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와 같은 인간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세계에서의 선교
타락: 사탄으로 인해 육체적, 지적, 사회적, 영적으로의 모든 영역의 타락에선 하나님의 선교는 그분의 창조 세계 전체에서 악한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는 것이다
구속: 아브라함의 부르심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는 사람과 사건들을 통해 역사 안에서 구속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구약: 아브라함은 죄와 분열의 해결을 위해 , 출애굽은 열방 앞에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 이스라엘은 열방을 빚을 빚기 위하여
신약 :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을 이르시기 위해 메시아로 이스라엘을 구현하실 분 신실함과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약속된 구원을 땅 끝까지 가져가실 분 예수님을 보내신다. 오순절 성령이라는 종말론적 선물로 교회가 시작되며 이방인을 포
함한 이스라엘의 확장됨으로 아브라함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창세기 3장 11장의 죄와 분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된 것이다.
새 창조 : 악이 최종 발언 권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에 의해 파멸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의와 평화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모든 나라에서 구속받은 자신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우리는 성경적 선교신학을 이야기의 끝까지 이해할 때 성경적 신앙과 희망이 생겨난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서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도 앞으로 추동된다
선교는 그 원대한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이 보장하신 이야기의 절정에 이를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2 과를 정리하며 : 하나님의 선교는 갑자기 예수님의 지상 대명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타락으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의 세계를 죄와 분열 모든 문제의 악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열망. 구속적 역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 안에 있다. 구약의 구속 역사와 신약의 십자가 이후의 교회의 방향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구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의 심판은 죄악을 죄 거하는 기쁜 소식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살 것은 긍극적 좌표와 소망과 믿음 낙관론을 우리에게 준다. 그 이야기를 아는 백성은 하나님의 선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단지 명령의 수준을 넘어 원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목표를 향해서..